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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요재공>청효당공휘종신사적(淸孝堂公諱宗信事蹟)
淸孝堂公諱宗信事蹟 公諱宗信字季相農隱先生諱元吉十二世孫考諱命亨隱德不仕號松齋公以英宗丙辰三月十二日生稟性忠孝才德聰睿有大人君子之風五歲誦孝經八歲講小學手不釋卷口不絶聲凡經史之集必融解其奧志而後己又精於性理之學與宋性潭先生煥箕相爲道義之交以爲士林之推尙終以德行著于世甞事兩親供奉之節定省之道無一闕或有親癠則晝宵不寐食飮不八口藥餌粥飮親執之而不委於人父親甞以沈病臥枕累月幾至殞絶藥無所效奈何親命願得鰲肉雪天氷江公祝天號泣入江叩氷爰有一鱉躍出氷上得還以供甘旨病遂得差以終天年時本倅李徽之美其誠孝之至稱公之號曰淸孝堂演以爲序常言其誠孝淸謹文章德行而將聞于 朝其後李公果如其言 啓聞于 朝公終不起焉丁內外艱號哭不止不見天日居廬踰禮二聖之賓天英宗正宗公失聲痛哭一如私艱居外行素每値諱辰如終身之喪 純廟朝乙酉以壽階 除官職又特施恩 賜金盞丙戌四月十七日卒享年九十一當時諸賢多有哭輓遺稿文獻留在乎後孫之家耳 七世孫 澤烈 撰 청효당공휘종신사적(淸孝堂公諱宗信事蹟) 공의 휘는 종신(宗信)이요 자는 계상(季相)이며 농은선생 휘 원길(元吉)의 十二세손이었다. 공의 휘는 명형(命亨)이요 호는 송재(松齋)로 덕을 숨기고 벼슬 아니하였다. 공이 영종병진(英宗丙辰)년 三월 十二일에 출생하였는데 성품이 충효로우며 재덕이 총명하고 슬기로와 대인 군자의 풍도가 있었다. 五세에 효경을 외우고 八세에 소학을 강하야 손에 책을 놓지 않고 입에 글소리가 끊기지 아니하며 무릇 경사자 집을 반드시 그 깊은 뜻을 해석한 뒤에 말고 또 성리학에 정통하야 송성담환기(宋性潭煥箕)로 더불어 도의로 교유하니 사림이 높이 추앙하고 마침내 덕행으로 세상에 이름이 나타났다. 일찍 양친을 섬기며 뜻과 몸의 봉양과 문안의 절차를 한번도 궐함이 없고 혹 어버이가 병환이 나시면 밤낮 아니자고 음식을 먹지 아니하며 약과 미음을 친히 받들고 다른 사람에게 맡기지 아니하였다. 부친이 일찍 병환이 나서 여러달 자리에 누워 거의 운명하게 되었는데 약은 효력이 없고 어버이가 자라고기를 원하므로 엄한 겨울 얼음강에 공이 하늘에 빌고 부르짖어 울며 강에 들어가 얼음을 깨니 이에 자라 한마리가 얼음위에 뛰어오름으로 얻돌아와서 달여 드리니 병이 마침내 차도가 있어서 천년을 마치었다. 때에 본군 군수 이휘지(李徽之)가 그 성효의 지극함을 가상히 하야 공의 호를 청효당이라 하고 따라서 서문을 지어 항상 그 성효가 청근하고 문장과 덕행이 숭고함을 칭찬하며 장차 조정에 주달한다더니 그 뒤에 공이 과연 그 말과 같이 조정에 계문하였으나 공이 마침내 일어나지 아니하였다. 내외간을 당하여 울음을 그치지 않고 하늘과 일월을 보지 아니하며 예제에 지나치게 시묘하고 영조(英祖)와 정조(正祖)가 승하하매 소리가 변하도록 통곡하며 소의소식으로 부모상 같이 하고 매양 제사날을 당하면 종신상 같이 하였다. 순조(純祖) 을유(乙酉)년에 수직으로 벼슬을 제수하고 또 은전을 베풀어 금잔을 하사하였다. 병술(丙戌)년 四월 十七일에 향년 九十一세로 별세하니 당시 사림이 많이 곡만(哭輓)하였고 문집과 문헌은 후손 집에 수장하였다. 七세손(世孫) 택열(澤烈) 찬(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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